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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증식 스파티필룸 3인 3색 키우기 - 3년 관찰 일기

어릴 때 부모님이 고깃집을 하셨어요. 개업을 할 때 주위에서 선물로 큰 화분들을 주시잖아요. 저희 집에도 고무나무, 벤자민, 관음죽 같은 그 시대에 유행하던 화분들이 꽤 들어왔습니다. 난처럼 섬세한 식물은 식당 안에서 키우고 벤자민이나 관음죽 같은 크고 강한 식물들은 안에 들여놨다 밖에 내어놨다 하면서 키웠는데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식물들이 자라는 게 보기 좋고 재밌더라고요.
어느 날 학교 숙제로 열무 키우기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집 옥상에 파란색 기다란 화분을 두고 열무 씨를 심은 뒤 물을 주며 기다렸어요. 무럭무럭 싹이 돋아나고 꽤 잎이 올라왔는데요 어느 날 올라가 보니 새까맣게 벌레에 뒤덮여 있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는데 제 열무는 속절없이 죽어버렸지만 함께 시름시름하며 잎을 다 떨구던 벤자민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그 강렬한 기억들이 계속 식물을 좋아하게 된 이유일수도 있겠네요.

2022년 8월 4일

 
혼자 독립한 이후부터는 꾸준히 식물을 키우고 있는데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조금 다른 영역이라 식집사 생활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자꾸 죽이고 새로 들이다 보니 죄책감도 들지만 식물 산업 생태계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 저희 집에서도 꾸준히 잘 자라는 예쁜 식물이 있답니다.
 

2022년
2022년 8월 21일

 
바로 스파티필룸입니다. 풍성하고 생명력 느껴지는 잎 만으로도 참 예뻐요. 가끔 청순하고 우아하게 생긴 꽃도 피워줍니다.
매년 3월마다 양재꽃시장에서 키우기 쉽다는 식물이나 키워보고 싶었던 식물을 들여오곤 했는데요 1~2년쯤 버티다가 제 곁을 떠나가던 아이들과 달리 꿋꿋이 제 옆에서 화분이 빽빽해지도록 자라났길래 이번엔 새로 들이지 말고 스파티필름을 분갈이만 해주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2023년
2023년 7월 21일

 
하나의 화분에서 무려 6개의 화분이 나왔습니다. 물을 준지 좀 되어서 잎이 살짝 쳐 저 가던 때에 분갈이를 하는 바람에 잎들이 다 아래로 축축 처져있네요. 큰 줄기 기준으로 분리했는데 분리하다 보니 아주 작은 새순도 분리가 되어서 버리긴 좀 그렇고 작은 화분에 잎 두 장을 조심스레 심었어요. 자라긴 하려나 걱정되다가도 너무 귀여워서 미소가 나옵니다.
갑자기 화분이 좀 생겼으니 양가에 큰 화분을 하나씩 나누었어요. 흰색 큰 화분은 시댁으로, 갈색 플라스틱 화분은 친정으로 보내졌는데요. 각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2024년
2024년 3월 7일

 
와.. 이 녀석이 시댁으로 간 화분이예요. 저 이렇게 꽃이 크게 높게 자란 건 처음 봤어요. 제가 분갈이할 때 영양가 높은 좋은 흙을 쓰긴 했는데 이렇게 잘 자란다고요? 우리 집에 있는 싱싱한 친구들이 여리여리해 보이더라고요.
 

2024년 11월 20일

 
이 녀석은 친정으로 간 친구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제주도는 날씨부터 달라서 그런 걸까요? 사실 처음에 스파티필름인지 모르고 어떤 열대지방 쪽 식물인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제가 가져온 화분이라고 말해주셔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너무 멋있네요.
 

2024년 11월 22일

 
 이 녀석은 저희 집에 있는 녀석입니다. 여리여리 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집 못지않게 건강하네요.
환경마다 다르게 자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디서든 건강하게 자라는 게 기특하기도 해요.

2023년 vs. 2024년


두 잎만 심겼던 아이도 1년이 지나니 이렇게 컸답니다. 처음엔 더뎠는데 어느 이후로 눈에 띄게 성장했어요. 성격상 벌써 분갈이를 해줬을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두었는데 오히려 건강해 보입니다.
스파티필름은 참 키우기 쉬워요. 목이 마르면 목마르다고 잎을 늘어뜨려 알려주고 물을 주면 다시 바짝 살아나고 햇빛 주면 무럭무럭 자라고 공기 정화도 해준다고 하잖아요. 잎에 독성이 있다고 하니 괜히 먹지 않게 조심만 하면 됩니다.
혹시 식집사로 입문하고 싶으신 분이나 식물 키우기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은 스파티필름을 추천드려요. 가장 큰 화분이 더 빽빽해지면 다가오는 봄에 분갈이 한 번 해야겠네요. 봄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