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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와서 어딜 둘러볼까 하다가 올레길처럼 잔잔하게 걷고싶다고 아버지께 주문했더니 한라산둘레길을 가보자고 하셨다. 시오름을 갈 예정이었는데 네비게이션을 찍고 갔더니 한라산둘레길 중 동백길 초입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둘레길 입구마다 관리자가 있는데 얼마나 걸을 것인지 물어보신다. 알고보니 둘레길은 오후 2시 이전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두근두근. 나무가 푸르르다. 오늘은 제주 날씨가 아주 맑고 공기가 좋았다. 서울은 미세먼지 수치가 나날이 높아지는데 제주는 계속 청정제주로 남아주길 바라며 기분좋게 걷기 시작했다.

둘레길은 5코스정도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가려는 시오름은 동백길이다. 생각보다 길어서 시오름으로 바로 가야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현위치는 지도의 좌측 화살표이고 우리가 가려는 시오름은 지도 가운데에 산으로 표시된 곳이다. 국도를 이용하면 지도 아래쪽 화살표 방향에 입구가 있다.

드디어 둘레길 입구 도착. 쭈욱 걸어 들어가려다가 아버지가 여긴 어차피 이런 길이 계속 있을거니까 돌아나와서 시오름으로 가자고 하셨다.


제주도는 해가 강해서 길게 외출할 때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는게 좋다. 제주 사람들은 여름에도 반팔을 잘 안 입는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도 팔토시를 즐겨 사용하신다.

돌아 나오는 길에 벤치에 앉아서 이마트에서 사온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었다. 이마트 도시락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특히 김밥이 조금 비싸다 싶었는데 그만큼 속이 꽉 차서 맛은 괜찮았다. 동일하게 나눠 먹었더니 아버지는 양이 조금 모자라셨던 것 같다. 수분 보충을 위해 과일도 샀는데 파인애플은 참 맛있었는데 사과, 포도, 배 과일팩은 사과에서 소독약 같은 향이 나기도 하고 별로였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다시 돌아나와 달리다가 길 한구석에서 발견한 한라산 둘레길 (시오름) 표지판. 도로에는 아무 표시가 없고 길 한켠에 이렇게 표지판만 세워져있기때문에 지나치기 쉽다. 도로가 직진으로 1차선씩밖에 없어서 차가 많을 땐 차를 돌리기 어려우므로 과속하지 말고 잘 긴장하면서 살피는게 좋다. 여기도 차를 타고 쭉 올라갈 수 없고 입구쪽에 바로 관리하는 분이 서계시므로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쭉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에 발견한 고사리 (고사리를 찾아보세요). 저렇게 아직 피지 않고 쭉 대만 올라온 고사리는 꺾어서 가져가면 먹을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보통 4월쯤부터 고사리를 따서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고사리를 발견한 후 급 고사리 꺾는 모드로 들어간 우리가족. 털이 너무 많고 징그럽게 생긴 것은 피해가며 꺾었는데 금방 손에 한 줌 쥐어졌다. 어느정도 길을 올라가니 이미 사람들이 꺾어간 흔적만 남아있어서 이제 허리를 펴고 둘레길 걷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드디어 나타난 시오름 표지판.

시오름 입구에는 이렇게 멧돼지 출몰지역 경고문이 붙어있다. 멧돼지를 마주치면 막대기 등으로 자극하지 말고 즉시 관리협회로 신고하라는 글을 읽으며 신고 후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알면 먼저 피하지만 큰 소리로 위협하거나 돌을 던져서 놀라게 하면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특히 새끼를 거느렸을 때나 부상당했을때 사납고 위험하다는데 멧돼지의 번식기는 4~6월 사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럴 때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말고 조용히 피해야 한다.

적당히 인기척을 내면서 돌아다녀야 하지만 큰 소리는 내지 말아야 하는구나. 도란도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등산하면 괜찮을 것 같다.

시오름 입구로 들어섰는데 길이 정돈되어 있지 않아서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숲인지 구분이 잘 안되고 워낙 숲이 우거져서 약간 어두웠다.

길 중간에 멧돼지가 파헤친 걸까 싶은 흙더미들이 자주 보였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서 정비된 길로 돌아가자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호근 산책로로 걸어들어갔다.

근데 얼마 안가서 물이 마른 계곡을 마주쳤다. 계곡 끝을 보니 등산로가 끊긴 것인지 장판이 끊겨있어서 결국 계곡을 건너기 위해 내려갔다.

계곡을 건넌 후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다시 등장한 시오름 표지판.

오름이라 그런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쉬엄쉬엄 걷는 것은 아니고 경사가 조금 있었다.

산 중간에 신기하게 생긴 나무도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중간이 휘었는데도 높이 자랄 수 있을까?

갑자기 나타난 공터에는 철탑이 심어져 있었다.

열심히 시오름을 향해 걷는데 얼마나 남았는지 거리 표시가 안되어서 답답했다.

여기는 길들이 다 치유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었는데 치유숲길이라기엔 길이 꽤 험했다.

돌들로 이루어진 등산로. 돌 때문에 장판을 깔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장판이 사라졌다. 나무 중간중간에 길을 알려주는 이름표를 묶어놓아서 길을 찾기는 쉬웠다.

한참을 오르다가 다시 마주친 마른 계곡?! 조금 당황하며 건넌 후 걷다보니 나타난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기존 등산로!!!


아까 입구에서 무서워서 가지 않았던 '그 길' 인가보다. 계곡 건너는게 더 무서웠는데 갑자기 억울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길은 아닌지 등산객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고 이렇게 길이 잘 나있는 곳이 드물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 지저귀는 소리와 간혹 들리는 딱따구리가 나무찍는 소리가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딱따구리는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었는데 워낙 나무가 많아서 못 찾았다.

짜잔~ 드디어 시오름 정상까지 0.5km 남았다. 힐링센터는 이따 내려오면서 가보기로 하고 계속 올라갔다.

치유 숲길이 다양하게 나있는데 나무에 서로 다른 색 리본으로 표시를 해 놓았다. 그냥 시오름을 오르다보니 여러 치유숲길을 거쳤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주도 사투리로 이름을 지어 놓아서 정겹다.

한참을 올랐는데 아직 0.1km 밖에 안 왔다니?! 놀멍 편백숲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향긋한 나무냄새가 나서 한 번 들러보기로 했다.

편백나무가 한데모여 자라고 있었는데 돌담으로 둘러쌓인 것을 보니 누군가가 관리하는 숲인가보다.

길쭉길쭉 시원하게 뻗은 편백나무들. 막상 숲 한가운데로 들어오니 이미 코가 적응된건지 나무향이 많이 느껴지진 않았다.

마땅히 앉아 쉴 곳이 없어서 조금 둘러보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두 명의 등산객과 마주쳤다. 여기에 사람이 오긴 오는구나..

이끼로 뒤덮힌 바위.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지지않고 펴있는 동백꽃. 비슷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 때를 잘 맞춰가면 동백꽃이 많이 핀 것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길 이름이 동백길인가보다.


열심히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멧돼지의 숨소리 비슷한 소리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너무 놀랐는데 아버지는 못 들으셨다며 코웃음을 치셨다. 혹시 도망갈까 싶어 살짝 노래를 흥얼거렸더니 내심 무서우셨는지 어머니의 제지를 당했다. 

다시 열심히 올라 드디어 0.2km 남았다.

여기서부턴 이렇게 주황색 줄로 등산로를 표시해 놓았다. 줄을 참 단단하게 잘 묶어놓아서 쳐지는 줄도 없고 잡고 가기도 좋았다.

중간에 발견한 가녀린 나무. 이렇게 가녀린데도 줄을 잘 지탱해주고 있다. 미안해..

정상처럼 보이는 공터가 나타났다. 이게 정상인가? 긴가민가 하며 나있는 길을 따라 더 걸었다.

아직 정상이 아닌 것 같지?

드디어 나타난 정상. 구름에 가려서 한라산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인증샷도 찍고 먹다 남은 과일도 마저 먹고 잠시 쉬다보니 바람에 땀이 식어서 추워지기 시작했다.

내려오며 들러보기로한 힐링센터로 향했다. 걸어내려오는건 역시 순식간이라 금방 도착했다.

체험실과 시청각실 등 여러 시설들이 있었는데 산림치유 프로그램 참여자만 출입할 수 있어서 아무데도 들어가볼 수 없었다. 아쉬웠다.

건물 한켠에 마련된 치유샘. 저 옆에 돌이 쌓여있는 곳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마셔도 되는지 적혀있지 않고 물의 등급표도 안 보여서 가져온 페트병에 물을 받아보았는데 부유물이 있길래 마시지 않았다.

족욕탕도 마련되어 있는데 소금쟁이와 올챙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가운데에 보이는 둥근 건물이 화장실이다.

들어가보니 나무를 둘러놓아서 향긋한 향이 났다. 생긴지 얼마 안 된건지, 관리를 매우 잘 하는건지 깨끗하고 쾌적했다.

내려오며 다시 마주친 기존 등산로. 아까는 무서웠지만 이번엔 기존 등산로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기존 등산로는 이제 사용되지 않는 건지 길이 따로 정비되어 있진 않았다. 아까도 멧돼지 숨소리 같은 소리를 들었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려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뭔가가 후다다닥 뛰어간다. 나는 깜짝 놀라서 멈춰섰더니 저멀리 무언가도 멈춰서 우리쪽을 쳐다보길래 천천히 움직여 우리 갈길로 내려갔다.

드디어 시오름 산길을 벗어나 포장된 도로가 나왔다. 기존 등산로로 내려오니 상당히 빨리 내려올 수 있었다.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상당히 험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고 좀 더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돌길이 많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긴장하며 걷다보니 더 스릴있고 재밌었던 것 같다.

다시 차를 타고 국도로 들어섰다. 5시가 아직 안 되었는데 아까보다 차가 많아졌다.

차 안에서 다시 찍어본 표지판. 안녕 잘 있어라.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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